고등학교 때 사용하던 혼비 옥스퍼드 영영한 사전
맨
뒷 장에 남겨진 친구 포니의 거한 낙서 한 장으로 기억되곤
한다.
지금처럼 그 때도 역시 유난히 커피를 좋아했던 고등학생 꼬날을
위해
친구 포니는 매일 도서관과 음악실 사이의 커피 자판기에서 꼬날을 만나주었고,
거의
매일 학교 앞 강화 슈퍼에 나가 1,000원짜리 잔 커피 선생님
몰래
마셔주기를 함께 해 준 의리있는 친구였다. 우리는 고등학교 1학년 때만
같은
반 친구였지만, 그렇게 3년을 붙어 다니며 함께 공부했다.
저
낙서를 할 때에 포니와 꼬날이 워크맨 이어폰을 한 짝씩 나눠
끼고
듣고 있던 음악은 전인권 아저씨의
이 노래였던 기억도 생생하다. 포니는 이
노래를
유난히 좋아했다. 나눠 보고 있던 책은 성문영어 시리즈에 도전하며 야심차게
등장했던
맨투맨 시리즈의 저자가 내 놓았던 영어 문제집이었을 것이다. ㅋㅋ :-)
합창부 반장이었던 친구 윤호가 좋은 구경 시켜준다고 몇날 며칠 나를
설득해
데리고 간 곳은 이문동 외국어대학교 근처의 어두운 카페였다. 8과 1/2이라는
요상한
이름(나중에 그게 영화 제목이라는 걸 알게 되었지만)의 그 카페는 길다란
유리관에
동그란 유리볼이 달린 커피 추출 기계에 과학 시간에나 보던 알콜
램프에
불을 붙여 원두 커피를 끓여 내 주던 곳이었다.
1988년
당시 고등학교 2학년 학생들의 눈에 그 커피 추출 기계는 바다
건너
일본 여행 정도 다녀온 것 같은 기분을 갖게 하는 신기한
광경이었던
것 같다. 엄마 몰래 학교 담 넘어 멀리까지와서 많이 떨리기는
하지만
재미있는 구경에 맛있는 커피를 마시게 되어 좋아라 하는 꼬날이를 보며
의기양양해하던
친구넘의 얼굴이 오랜만에 떠올랐다.
김탁환의 이
소설
<노서아 가비>는 이렇게 커피와 함께 줄줄이 줄줄이 오래된 추억들을 떠올리며
나도 내 이야기를 하고 싶게 만들어 주었다.
내가 처음 마셨던 커피는 아마도 알러지가 너무 심해
훌쩍임을
멈추지 못하는 일곱살 나를 위해 설탕과 프림을 듬뿍 넣어 끓어주셨던
엄마표 커피였을 것이고, 가장 많이 마신 커피는 지난 11년간
거의
매일 아침 한 잔씩 들고 나서는
엄마 가게표 아메리카노 커피
일 것이고 ..
그래서 이 소설 <노서아 가비>는
'커피는
끝나지 않는 당신의 이야기다'라고 끝맺고 있는지도 모르겠다.